1/ 서론
인간 생활에서 종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바, 절대자에 대한 소망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활동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데 종교 생활은 역사적으로 원시 시대부터 오대양 육대주에서 개인은 물론 민족에 따라서 다양하게 형성 발전하였다. 예를 들면, 고대 원시 시대는 무속 신앙 및 신비적인 주술 혹은 정녕 숭배같은 당시의 전통대로, 이후 중세를 거치며 근현대는 근현대대로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과거와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 즉 사후 세계에 대한 안정된 삶을 지속적으로 갈망하였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 및 미래적 종교생활을 위해 요구된 것은 단순히 바라는 것, 즉 기도하는 것 만이 아닌 각자의 소원 성취를 위해서 혹은 죄의 용서와 미래의 보상과 행복을 위해서 몸과 마음, 물질을 지정된 제단에 드렸다. 따라서 종교 생활과 제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2/ 종교의 정의
종교(宗敎, religion)는 전통적으로 영적인 존재나 초월적 질서에 관한 관행, 도덕, 신념, 믿음 등을 공유하는 이들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과 규범, 다양한 의식문화 체계를 가르친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절대적 진리의 추구, 절대자에 대한 숭배 혹은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거나 미래적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좀 더 부연하면 종교는 종종 특정 신앙 체계나 의례적 실천으로 협의적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평생 동안 겪는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구체적 과정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외적으로는 사회적 관계에서, 내적으로는 인간 각자의 본능적 세계를 설명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 구조에는 종종 초월적 질서, 선악의 구도, 즉 상선벌악(賞善罰惡)과 같은 상징과 의례적 요소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적 특성이 곧바로 종교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종교적 삶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종교적 이념은 사회적 실천, 예를 들면, 성숙한 도덕적 삶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원시 시대의 미신 혹은 주술적 삶을 포함한 종교 생활은 초월성과 의례성을 중심으로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갖고 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다른 체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 중 하나로서, 역사적으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종교는 특정 종교에서 보듯이 한편 개인과 민족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삶의 방향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갖는 동시에, 다른 한편 권력화되거나 배타적 논리로 작동할 경우, 몇몇 원리주의자들(유대교와 이슬람, 공산 주사파)에서 보듯이 갈등과 억압을 낳는 부정적 측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를 단순히 제도나 교리로 축소하거나, 반대로 인간 존재 일반의 보편적 구조와 무차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 고유성과 한계를 균형 있게 살펴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헌금을 셋으로 정의하기를, (1) 감사의 응답으로서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겨주시는 시간이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먼저 받는다. 헌금은 바로 이 은혜에 대한 우리의 가장 구체적인 감사의 응답이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기쁜 마음으로 답례하듯, 헌금은 우리가 먼저 받은 것을 기쁨과 감사로 다시 돌려드리는 신앙의 반응이요 응답이다. (2) 이웃을 향한 섬김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돈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당신의 이웃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사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기에 우리의 물질이 전혀 필요 없으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은 곧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코이노니아(성도 간의 교제)이자 디아코니아(이웃을 향한 섬김)라고 하였다. (3) 나 자신을 드리는 헌신, 헌금 봉투에 담긴 물질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 개인의 땀과 시간, 노력, 곧 생명의 일부이다. 따라서 헌금을 드리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 이시다를 사적 공적으로 고백하며, 나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는 거룩한 자기 봉헌이다 라고 하였다.
3/ 종교와 성경의 제물(헌금)
앞에서 살펴본 대로 종교 생활, 즉 소원 성취를 위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구도자는 각자의 종교를 따라서 각각의 신에게 지정된 제단에서 제물(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식은 다양한바, 하지만 특별히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그의 후손들, 구약과 신약,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2,000년 동안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앙생활, 즉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성취와 완성, 그 나라 백성으로서의 성숙한 삶의 지속적인 추구를 통해서 실천되었다. 실제로 성경은 창세기, 특별히 레위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서의 다양한 제사가 기록되었다. 당시 제정의 제물로는 곡물과 짐승으로, 전자는 농산물 중에서 밀, 보리, 기름이며 후자는 비둘기를 포함하여 염소와 양, 소와 같은 동물 등이다. 현대에 와서는, 특별히 21세기 인터넷 시대에는 예배 중에 헌금을 드리기도 하지만 구좌를 통한 헌금이 일상화 되었다
4/ 헌금의 자세와 용도
(1) 자세: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종종 신앙의 행위로서 헌금 혹은 봉헌(奉獻)은 헌납이나 헌정과 유사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엡 2:1-2,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값 없이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바치는 신앙의 행동을 가르친다. 여기서 헌금을 바치는 것은 단순히 물건 혹은 헌금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 즉 몸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수님은 헌신(헌금)과 관련하여 바리새인처럼 넉넉한 생활 속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헌금보다는 마치 과부의 2렙돈처럼 가난한 사람이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드리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 귀중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눅 21:1-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2) 용도: 오늘날 교회는 헌금으로 들어오는 수입을 교회의 유지를 위해 통상적으로 드리는 주일 혹은 주정헌금, 교회의 활동, 예를 들면, 전도와 교육, 사업과 사회복지 등을 위한 헌금, 재해 등의 구제사업에 쓰이는 구호헌금, 질병의 완쾌와 출산, 결혼과 장례 등에 대한 감사헌금, 탄생일과 사망기념일의 기념헌금 등과 같은 특별헌금과 용도를 지정한 지정헌금, 장학금헌금, 임직 헌금과 특별 새벽 기도회 헌금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절기를 따라서 드리는 맥추 감사와 추수 감사, 성탄절 헌금 등이 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일단 제단에 드린 헌금은 특정인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도 드려진 헌금은 반환받을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기부나 헌납 행위가 아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헌금은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이미 하나뿐인 생명을 피의 제단에 드린 제물을 다시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종종 주변에서 헌금을 환급해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 훼방 죄를 범한 것이다. 간 큰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히 어떻게 십자가로 이루신 주님의 구원을 헌금으로 취소할 수 있겠는가? 눅 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5/ 결론
지금까지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헌금의 용도에 대한 연구는 헌금의 정의와 용도에서 본 것처럼 구원에 대한 감사로, 구약시대에는 언약의 그림자로서 여러 제사의 가르침과 전통을 따라서 형편대로 곡물과 동물을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드려 모든 언약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히 4:16,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수 있게 되었다.
히 10:19-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 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비록 성도가 감사의 표현으로 제단에 물질(헌금)을 드린 것은, 어떤 경우에도 반환받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경에 행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잘못 드려진 제물을 하나님이 거절하셨어도, 드려진 제물을 다시 돌려받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제단에 드린 헌금을 다시 돌려 달라 혹은 돌려받고 싶다는 생각은 마귀적이며 사탄적인 것이다. 헌금은 사람 간의 교제 행위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감사 표시였기 때문이다. 혹 제단에 드린 헌금에 대하여 사특한 마음이 들 때 엎드려 가슴치며 통회해야 할 것이다.
헌금 (Offering)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한주 동안에 기도로 준비하여 준비된 봉투를 험금함에 넣는 것이다. 이것은 순서에 따라서 혹은 다른 성도들이 하니까 채면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헌금은 양이 많든 작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각자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헌금자는 그것이 비록 물질이지만 그것은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깊고 풍성한 영적 의미가 내포되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헌금은 단순히 돈을 내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고백하는 가장 구체적인 예배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특한 마음으로 그 누구라도 이를 더럽혀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2026년 6월 14일
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동작구 사당동)
서요한 교수(역사신학)
서요한 교수
경력:
* 2024년 8월 애국문화예술재단(PCAF) 이사장(총재 최영섭, 고문 임긍수)
* 2014년 한국가곡세계선양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회장 최영섭)
* 2022년 8월 현재 청교도신학원 교수(역사신학)
* 2021년 8월 현재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역사신학)
* 영국 대영도서관 박사 논문 등재(DX183379)
*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그린 칼리지 박사 후 과정(Postdoctoral)
* 영국 웨일스 글라모르간대학교 철학박사(Ph.D.)
*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 신학석사(Th.M.)
*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Free Church College(포스트 디플로마 in Theology)
* 영국 런던신학교/London Theological Seminary 졸업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전신 합동신학교) 목회학 석사 (M.Div.)
*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B.Th.)
저서:
언약사상사(Ph.D. 1994): 영국 대영도서관 등재(DX183379)
초대교회사(2010)
중세교회사(2010): 제21회 기독교 출판문화 최우수상 수상)
종교개혁사(2013)
개혁신학의 전통(2014)
스코틀랜드 교회와 한국장로교(2015)
청교도 유산(2016)
근현대교회사(2018)
제자도의 원리와 실제(2022)
청년 이승만의 세계관(2026)
만화 초대교회사 I, II(2015)
만화 중세교회사 I, II(2016)
만화 종교개혁사(2024)
설교집:
(1) 빈들에 임한 계시(2015)
(2) 광야에서 맺은 사랑(2015)
시집: (1) 내 가슴에 타는 불은(2013)
(2) 가나안 가는 길(2024)
(3) 가을꽃 당신(2024)
작사 악보:
(1) 서요한 작사, 최영섭 작곡(그리운 금강산): 성가곡, 찬송가, 서정가곡(100곡) 출간 (2018)
(2) 서요한 작사, 임긍수 작곡(강건너 봄이 오듯): 성가곡, 애국가곡, 서정가곡(43곡) 출간 (2021, 2026)
(3) 우남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념 노래(2026: 총 24곡)